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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그린 작품 기술인가 예술인가

인간 모든 생활을 꿰뚫고 있는 페이스북이 알고리즘 이용하면 글로벌 히트곡을 작곡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시대

현대사회에서 ‘예술’은 인간의 감정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심리적인 힘을 포착해 이를 표현해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창조한 예술 작품은 감상하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 작품이 보고 듣는 이의 감정을 뒤흔드는지에 무게를 둔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감상하는 사람의 내면(內面)에 달린 문제라고들 말한다.

1917년 예술가 마르셀 뒤샹(Duchamp·1887~ 1968)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소변기를 하나 샀다. 그리고 펜을 들어 소변기 위에 서명한 뒤,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회에 내놓았다. 전 세계 예술계는 발칵 뒤집혔다. 공장에서 만든 소변기를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를 놓고 벌어진 설전은 ‘예술의 정의’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뒤샹의 작품을 예술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예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아름다움이란 감상하는 사람 내면의 기준에 달린 것이며, 감상자가 ‘예술’로 바라본다면 어떤 것이든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 소변기가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소변기가 예술 작품이다.” 쉽게 말하자면 ‘소비자가 왕’이라는 얘기다.

올해 로봇아트재단의 ‘로봇미술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로봇 ‘픽스18’의 작품 ‘사람(Human·패널에 유채, 30x46cm)’. 컬럼비아대학교 연구팀이 만든 이 로봇은 반 고흐 스타일의 붓터치를 익혀 추상화부터 인물화, 정물화까지 다양한 그림을 그려냈다.
올해 로봇아트재단의 ‘로봇미술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로봇 ‘픽스18’의 작품 ‘사람(Human·패널에 유채, 30x46cm)’. 컬럼비아대학교 연구팀이 만든 이 로봇은 반 고흐 스타일의 붓터치를 익혀 추상화부터 인물화, 정물화까지 다양한 그림을 그려냈다. /로봇아트재단

인간 감정 치유하는 ‘AI 예술가’의 출현

사람의 감정과 신체 반응을 정확하게 감지하고 분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나보다 나를 더 정확하게 아는 기계와 함께 살아가는 미래, 그때는 어떤 것을 예술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이토록 중시하는 ‘감정’은 더 이상 신비한 현상이 아닌, 생화학적 반응의 일종으로 여겨질 것이다. 알고리즘에 충분한 양의 정보와 연산능력만 더해지면, ‘사랑’ ‘증오’ ‘지루함’ ‘즐거움’ 같은 감정을 해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머신러닝(기계학습) 알고리즘에 사람 몸의 다양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더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한 사람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쌓이면, 알고리즘은 그 사람의 기본 성향과 시시각각 기분이 바뀔 때의 신체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세상이 왔을 때 가장 큰 변화를 맞을 예술 분야는 단연 음악일 것이다. 입력값과 출력값을 수치로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音)의 파동을 수학 패턴으로 만들면 입력값이 되고, 그 음을 듣고 나타나는 신경계의 변화 패턴을 기록하면 출력값이 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수백만 가지의 음악적인 경험에 따른 생체신호를 분석하면, 특정한 음파가 입력됐을 때 출력되는 고유한 반응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한 여성이 남자 친구와 심하게 다퉈 헤어질 위기에 처했다고 가정해보자. 평소 이 여성의 생체 정보를 충분히 수집해 둔 알고리즘은 이 여성이 어떤 음악을 들을 때 기분이 편안해지고 차분해지는지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먼저 감정을 다독이는 미국 팝송 ‘걱정마, 행복해(Don’t Worry Be Happy)’를 들려준 뒤 프랑스 음악인 ‘떠나지마(Ne me quitte pas)’와 영국 가수 아델의 ‘당신 같은 사람(Someone Like You)’으로 속마음을 대변해준다. 이어 밥 말리의 ‘모든 것이 잘될 거야(Everything’s Gonna Be Alright)’를 틀어주면서 위로한다. 사람은 이런 인공지능의 선곡(選曲) 능력을 당해낼 수 없다.

철저한 ‘맞춤형 음악’이 삶 속에서 만나는 ‘뜻밖의 재미(serendipity)’를 빼앗아 간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이 충분히 발전하면 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 알고리즘을 이용해 음악을 들을 때 생전 처음 듣는 음악도 일정 부분 섞어 추천하도록 설정하면 된다. 그 후 알고리즘은 새로운 음악을 들을 때 나타나는 사람의 생체 신호를 분석해, 기대하지 않았던 음악이 얼마나 자주 나와야 가장 즐거워하는지 알아낸다. 그러면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세렌디피티 빈도’를 설정해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하면 알고리즘이 이용자에게 가장 적합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음악을 편곡하거나 작곡할 수도 있다.

기계를 예술가로 인정할 수 있는지 논란

흔히 우리는 예술 작품이 특별한 감동을 주는 이유로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든 생활을 꿰뚫고 있는 페이스북이 언젠가 각 사용자의 내면을 뒤흔드는 맞춤형 예술작품을 만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글로벌 히트곡’을 작곡하는 일도 알고리즘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신나게 춤추고 싶게 만드는 리듬과 멜로디를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런 날이 왔을 때 과연 예술가들은 기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계를 예술가로 인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다. 만약 예술의 판단 기준이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의 문제라면, 알고리즘은 언젠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예술을 창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 인간의 감정을 넘어선 그 무엇, 우리의 생화학적 반응을 넘어선 그 무엇이라고 본다면, 알고리즘이 ‘예술가’ 반열에 오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세기의 걸작을 남기는 예술가가 되는 일은 AI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어려운 과제 아닌가?

출처 : http://weeklybiz.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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